글 문체 샘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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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약간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러니 저러니 허울 좋게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만 본론은 결국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죽고 싶은 이 누가 있겠냐만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타토는 무던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그게 곧 죽어도 괜찮다는 명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만, 다른 이에 비해서 죽음에 대한 감각이 다소 가벼웠다. 그러니 타토는 기왕이면 죽는 쪽이 자신이길 바라는 당신의 말에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깨닫지 못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듯, 예의 그 붉은 눈을 두어 번 끔뻑일 뿐이었다.
이곳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소멸되었다기 보다는, 죽음으로부터 억지로 다시 생을 끄집어내는 것에 가까운 장소였다. 적어도 타토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아직 이곳에서 죽어본 적은 없다만 죽음이란 것의 성질이 변하지는 않을 테니 이전의 겪었던 것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타토는 당신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짐작하기로는 몸을 이루는 것이 꽃이고, 아마도 그 꽃은 장미일테고 하는 눈에 보이는 일부분에 대해서만 겨우 알았지. 더 궁금하다면 당신에게 물어봐도 괜찮지만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물어보겠는가. 여기서 상대에 대해 더 아는 것이 생기면 바뀌는 것이 있나? 죽일 때의 죄책감? 판단을 유보해서 생기는 거리낌? 죽음의 이름이 흐릿한 곳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지 않나. 죽지 않는 곳이라기에 상대를 죽이고, 그래도 죽기는 싫으니 결정을 미룬다. 누구나 할 법한 생각에 죄를 따지는 이는 없을 터다.
결국 문제는 빙빙 돌아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이 방에서 나가야 한다.
이 방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한다.
고를 수 있는 것은 누가, 어떻게, 죽을지 그 정도뿐. 이마저도 싫다면 언젠가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볼 수도 있겠으나 끝은 어차피 죽음인게 분명하지 않은가. 선명한 죽음을 앞에 두고서 눈을 가려봤자 가려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은 눈을 감더라도 내 곁에 있으니.
타토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큰 고민은 아니었다. 단지 벽에 걸린 무수히 많은 이름의 죽음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좋을지 아직 선택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 이럴 때면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이 참으로 원망스러워진다. 차라리 아무거나 들고 죽여달라거나, 죽어보라거나. 그도 아니라면 알아서 죽거나. 아무거나 선택하면 되는 일인데 고작 그 하나가 어려워서 이러는 모양새란.
스스로 어이가 없었음에도 웃음을 내뱉을 수 없는 신체는 아무런 소리를 내뱉지 못한다. 방 안을 맴도는 것은 두 사람 분의 호흡과 맥이 뛰는 소리, 그리고 눈이 감겼다 다시 떠지는 소리들뿐.
타토는 눈만 돌려 당신을 내려다본다.
시체와 함께 지내는 것은 자신에게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타토에게 죽어줄 것은 먼저 권했다. 죽기 싫다는 뜻이겠지. 아무래도. 이해한다. 자신도 죽음이 마냥 반갑지는 않으니 아프지 않았냐는 물음에 애매한 대답을 남겼지 않은가. 실제로 명확히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제쳐두고서도 좀 더 명확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음에도 피했지 않은가.
그렇기에 타토는 수첩을 들어 글을 써내려가려 했으나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 잠시 수첩을 덮어둔다.
말은 휘발하고, 글은 남는다.
당연한 소리였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도 당연하냐고 물으면, 글쎄. 타토는 애매한 대답이나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당신의 말이 끝난 후로 다시 정적이 찾아든다. 타토가 말을 할 수 없는 탓도 있지만, 수첩을 다시 편 탓도 있었다. 펜을 잡은 손이 잠시 멈춰있다. 금방이라도 글을 써 내려가려던 아까는 전부 잊은 듯이 펜은 얼마간 움직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움직인 펜은 그리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골라줘.]
간결한 세글자 뒤로 타토가 손을 뻗어 벽을 가리켰다. 저 중에서 하나를 골라달라는 듯 벽을 보는 눈에선 살의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텅 비어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