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超新星
빛을 내며 사라져요. 이게 우리의 끝은 아니겠지만, 이것으로 우리의 관계에는 하나의 종말이 오겠죠. 끝은 시작이에요. 이 끝으로 우리는 어떠한 새로운 궤도를 얻어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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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그것은 우주를 다루는 자에게 아주 친숙하고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하나의 가설은 여러 개의 연구를 부르고, 이어진 연구는 이내 곧 정립된 이론을 도출해낸다.
그렇다면 여기서 레이나가 너에게 내릴 수 있는 가설은 무엇이 있는가.
첫째, 내가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당신은 피학적인 성향을 즐기게 되었다.
둘째, 당신의 종족 자체가 원래 피학을 즐기는 종족이다.
셋째, 당신은 특이 체질로 고통을 쾌락으로 받아들인다.
넷째, 다섯째, 여섯째…
다 의미 없는 짓이다. 너는 사고하는 생명이다. 그런 존재에게 가설을 세우며 멋대로 생각하는 것은 실례이다. 그러니 레이나는 너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면서도 너에 대한 특출난 감정을 지니지 않으려 했다. 동정도, 무시도, 멸시도. 그 무엇도. 이 광활한 우주 안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결국 유기체며 방식은 다를지언정 이 우주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네가 타인에게 어떤 말을 들으며 살아왔든 레이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부분이었다. 레이나에게 레이나의 방식이 있듯이 너에게는 너의 방식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면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은, 역시나 하나.
죽음과 고통에 대한 열망.
아픔은 학습이다. 때로는 그 학습을 넘어선 열망으로 고통을 선망하는 이들이 있지만 네가 애타게 부르짖는 고통에서는 다른 결이 보였다. 오직 그것만을 배워낸 족속마냥, 아는 것이라곤 그거밖에 없기에 사랑을 노래하지 못하고 고통을 부르짖는 거밖에 하지 못하는. 그래서 나눠줄 수 있는 거라곤 아픔뿐이라고. 그래서 레이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섣불리 해내지 못했다. 정말로 고통을 즐기는 존재가 아니라 그거밖에 몰라서 찾는 존재라면? 네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그 사실을 무시하고 너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옳은 행위인가. 결국, 나 역시 너를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동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오만한 가설이다. 나는 너에 대해 명확하게 아는 것이 없다. 알아가려 하지만 우리는 애당초 타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나는 너를 어떻게, 어디까지, 얼마나 생각하고 대해야 하는가. 계속해서 돌고 도는 문제라는 고리들의 순환 속에서 내릴 수 있는 것은 결단을 내리는 일밖에 없었다.
죽거나, 죽이거나.
처음의 그 문제로 돌아왔다.
선택을 미룬 것은 두려움이었고, 두려움이란 관계의 결말에 대한 공포였다. 레이나는 이상적인 관계상을 그렸다. 하지만 너에게는 와닿지 않을 탁상공론이었다. 너의 이상은 레이나에게는 과하다. 그럼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종착역은 어디인가.
레이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을 매듭짓고 새로이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이곳에서 나가야 했고, 그러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자신이 죽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그건 끝내 행동을 너에게로 미룬 것 아닌가.
레이나는 네가 아프지 않기를 바란 것이지 너에게 자신의 부담을 지우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 다시 질문을 해야 한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 레이나는 그것을 구태여 구구절절 늘어놓기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기를 택했다.
차가운 바닥에서 일어난다. 벽에 걸려있는 것들이 모두 낯설다. 이는 하나의 거대한 책장 같았는데, 무기들의 나열이라기보다는 죽음이라는 것을 형상화한 거대한 책장 같았다. 다양한 죽음을 내걸어둔 이 책장 속에서 레이나는 인류의 가장 친숙한 죽음을 꺼내 들었다.
빈 탄창을 채워 넣고, 안전장치를 풀고.
죽음을 손에 든 채로 향하는 내가 너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 죽음이 가장 빠르고 아프지 않기만을 바랬다.
레이나는 너를 껴안았다. 그리고 네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안녕, 우리 조금 있다 다시 만나요.”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은 낯선 행동을 아주 쉽게 해낸다. 총알에 부서지는 두 개의 머리란 어찌나 덧없는지. 두 개의 우주가 부서지며 하나의 궤적을 그려낸다.
이 짧은 낮잠이 당신에게 다정하기를 빌며.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