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커미션/샘플

글 문체 샘플 9

2ftt 2024. 8. 17. 12:22

자캐 커뮤 로그


자기 파괴적 딜레마의 연쇄에 관하여
 
누군가의 초상은 때로는 어느 도시의 축제를 위한 초석이 되어서.
나는 마음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또 흔들리고.

**


  스크린 위로 올라오는 이름들이 낯설다. 모두 모르는 이름이다. 이제는 알 수도 없는 이름들. 그 이름들이 이루어내는 유영이 너무나 낯설어서, 알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싶어서. 마차는 시선을 돌린다. 뒤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나열이 끝나지 않을 장례 행렬로만 보여서 마차는 결국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르고. 손에 든 국화가 유달리 버거워 뒷사람에게 떠넘기듯이 쥐여주곤 자리를 벗어난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곡소리, 죽은 이를 채 놓아주지 못하는 미련, 슬프다는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의 골들을 뒤로 하고 계속 내달리면 도착한 곳은 아득히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마차는 그곳에도 섞이지 못했다. 어느 곳에서는 사람이 죽었기에 남은 이조차 죽어가는데 왜 다른 곳에서는 그들의 피로 이루어낸 땅을 밟고 있으면서 웃을 수가 있는가. 결국 이 땅이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은 모두 우리의 피인데, 왜 그네들은 이 낭자한 선혈을 무시하고 나라의 안녕을 외치는가.
 
 어째서 우리는 무기로 길러진 주제에 죽을 때는 한 명의 사람으로 죽는가.
 
 수 없이 떠오르는 물음이 마차를 파고들어 온다. 무시하고 살았고, 살아있기에 무시할 수 있었던 것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우리는 무기가 아니다.
 우리는 주체성을 가진 한 명의 사람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아를 죽이고 무기로 살아야 하고, 세상에 관심을 끊어야 하지만 저 밖에는 가족이 남아있고. 그조차도 없는 이들은 한 점의 초상만 남기고 세상을 떠야 하는 이 현실이 과연 옳은가?
 마차는 입술을 깨물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있음에도 외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모든 부조리와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은 마차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고, 아마도 대부분의 아모도스 출신들도 비슷한 사유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범세계적 차원의 재난을 무슨 이유에서 국가 단위로 막고 있는지,
 많은 활용법 중에서 사도의 핵을 하필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이 주된 방법인지,
 이 행사를 열 돈으로 아모도스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들이 줄어들 텐데 왜 그러지 않는지.
 그랬다면 자신이 여기 서 있는 일도 없을 테고, 저 끝없을 국화의 주인들도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인데 그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끝없이 이어짐에도 마차가 아무런 말을 내뱉지 못하는 이유는 그저 그 역시 하나의 카르마이고, 그의 미래 역시 저렇게 될 것이 분명했기에. 세상에는 죽음이 내걸린 이 자리조차 배정받지 못해서 굶주리는 자가 아주 많은 것을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어서, 바보처럼 웃어넘길 뿐이었다. 이게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감히 반항할 용기가 없기에 내밀어진 목줄을 스스로 제 목에 내건다. 그 목줄이 언젠가 제 숨통을 쥐여올 것을 알면 뭐 하는가? 내가 이걸 거부하면 내 가족은 당장 굶을 텐데. 그들이 살아갈 수가 없는데. 가족이 살아가지 못할 거면 내가 사는 이유가 없어진다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믿었다. 믿음은 왜곡되어 자신을 내몰고, 내몰린 자신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또 자신을 스스로 속인다.
 
 모든 카르마와 니르바나는 니베아에 소속된 군인이다.
 니베아의 의무는 뉴네이드와 시민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위해 만들어진 무기일 뿐이다.
 
 이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되는데 우리는 그들의 죽음 앞에서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저 무기라고 여기면 되는데 나는 왜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우울해지는지. 단지 우리의 죽음마저 철저하게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정말 무기가 아닌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인가.
 이런 생각이 버거워 문득 뒤를 돌면 축제의 그늘에는 하염없이 울고 있는 이들만 보여서. 그들의 울음마저 모른 척할 수는 없기에
 
 이 화려한 초상 앞에서 마차는 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만을 느끼고.

'글 커미션 > 샘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 문체 샘플 10  (0) 2025.02.28
글 문체 샘플 8  (0) 2024.08.17
자캐 프로필 샘플 1  (0) 2022.09.18
글 문체 샘플 7  (0) 2022.05.11
글 문체 샘플 6  (0) 2022.05.11